🏯 일본,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를 향하여
701년, 일본은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갖추기 위한 대규모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른바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의 제정입니다. 이 율령은 단순한 법전이 아니라 국가의 조직, 신분 질서, 토지제도까지 아우르는 국가 설계도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 율령이란?
- 율(律) : 형법, 즉 범죄와 처벌에 대한 법
- 령(令) : 행정법과 민법, 즉 백성의 생활과 행정 운영을 규율하는 법
➡️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치는 ‘율령 정치(律令政治)’라 불리며,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천황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췄습니다.
🏛 중앙 정부: 태정관과 8성의 등장
중앙 통치는 ‘태정관(太政官)’이 맡았습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정부의 심장 역할을 했죠.
태정관 아래에는 8개의 성(省)이 있었고, 각 성은 다음과 같은 정치 업무를 분담했습니다:
- 중무성(中務省): 천황의 문서 관리
- 민부성(民部省): 호적과 조세, 인구 관리
- 병부성(兵部省): 군사, 병역 관련 업무
- 형부성(刑部省): 형벌, 사법 관리
- …등등
그리고 국가 제사와 신사(神社)의 관리는 신기관(神祇官)이 따로 맡아, 정치와 종교를 모두 체계적으로 정비했습니다.
🌾 지방 통치: 국-군-리 체계
중앙만 잘 다스린다고 나라가 돌아가지 않죠. 지방은 이렇게 나뉘었습니다:
- 국(国) – 큰 단위로, 중앙에서 파견된 국사(国司)가 다스림. 대개 귀족 출신.
- 군(郡) – 국 안의 중간 단위. 군사(郡司)는 토착 지방 호족이 임명됨.
- 리(里) – 가장 작은 단위. 일반 행정 단위로 백성들이 생활하는 곳.
📍 특수지역: 다자이후(大宰府)
큐슈 지역은 특히 외교와 국방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서, 다자이후가 별도로 설치되었어요.
🧑🌾 신분제도: 누가 누구였나
다이호 율령은 백성들도 신분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했습니다.
양민(良民)
- 유위자: 관직이 있는 사람, 보통 귀족 출신. 위계는 정1위~종9위 하까지, 총 30등급
- 공민: 일반 농민으로, 세금과 병역 의무를 가짐
천민(賤民)
- 노비나 수공업에 종사하던 사람들
- 조정, 귀족, 절, 호족의 소유물이 될 수 있었고 매매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 토지제도: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Handen Shūjuhō)의 유래는 중국의 균전제(均田制)에 있습니다.
📜 1. 중국 균전제의 유래
균전제(均田制)는 중국 북위(北魏) 시대에 시작되어 수(隋)·당(唐)나라로 이어진 토지제도입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국가가 토지를 균등하게 백성에게 분배하고,
- 일정 시점(사망, 은퇴 등)에 국가로 회수해 재분배하는 방식
- 남자는 일정 면적의 토지를 받아 농사를 짓고, 병역·부역·세금 의무를 지님
- 사유지를 제한하면서 국가가 백성을 직접 지배하고, 세원을 안정화하려는 목적
이 제도는 특히 당나라의 정전제도를 통해 정비되었고, 일본은 이를 모범으로 삼아 율령 체제를 구성했습니다.
2. 일본의 반전수수법: 균전제의 일본식 수용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은 균전제를 일본의 실정에 맞게 수정한 제도입니다.
- 701년 다이호 율령에서 공식화됨
- 6년마다 호적을 정비하고,
- 6세 이상 남자에겐 2단(약 120㎡×2)의 구분전(口分田) 지급
- 여자는 남자의 2/3 면적을 지급
- 토지는 사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
- 죽거나 이주하면 토지는 국가가 회수
이처럼 중국 균전제 → 일본 반전수수법으로 연결되는 흐름은, 율령 체제를 도입하면서 당나라 모델을 전범(典範)으로 삼았던 당시 일본의 중앙집권화 노력의 일환입니다.
📌 백성의 의무
🏹 이 구분전을 받은 백성은 조세 납부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 조(調): 특산물로 내는 세금
- 용(庸): 노동력 제공
- 조(租): 쌀 등의 농산물 세금
- 병역: 군 복무
- 역역: 공공사업 참여
📌 참고로…
반전수수법은 제도상으론 잘 정비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호족의 사적 토지 확대, 중앙의 행정력 약화, 호적 정비 어려움 등으로 인해 실제 운영은 점점 무너져 갔고, 결국 10세기 무렵에는 사실상 폐지되었습니다.
💬 마무리: 다이호 율령의 의의
다이호 율령은 단순히 법률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본이 '부족 연합 국가'에서 '천황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로 진화하는 과정의 결정판입니다.
이 제도는 2세기 넘게 유지되며, 이후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막부로 이어지는 일본 정치 구조의 뼈대를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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