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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 日本の歴史 | にほんのれきし

📚 “문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조선 지식인 유길준의 개화론 다시 읽기 "기차가 달린다고 개화한 나라일까?""모자 쓰고 사진 찍는다고 문명국일까?"19세기 말 조선,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쳐 서구 문명을 급속히 받아들이고 있었고,청나라는 자강(自強)을 외치며 서양 기술을 도입하고 있었으며,조선은 ‘문명’과 ‘야만’, ‘개화’와 ‘전통’ 사이에서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이 혼란스러운 시기, 조선 최초로 체계적인 서양 문명론을 소개한 책이 등장합니다.그 책이 바로 『서유견문(西遊見聞)』, 그리고 그 저자는 유길준(兪吉濬)입니다.👤 유길준은 누구인가? 이름: 유길준(兪吉濬, 1856–1914)출신: 조선 한성 출생주요 활동: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와 교류 / 일본과 미국 유학대표 저서: 『서유견문(西遊見聞)』 (1895년 출간)유길준은 일본과 미국 등지를 직접 유학하며 .. 더보기
🎌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개화론이란 무엇인가? 메이지 일본의 상징적 지식인, 그리고 일본 근대화의 논리를 대표한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ふくざわ ゆきち / Fukuzawa Yukichi). 오늘날에도 그는 일본 1만 엔 지폐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하지만 그가 남긴 ‘개화(開化, かいか / kaika)’의 의미는 단순히 “서양을 받아들인 근대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일본 중심주의와 계몽주의적 시각이 결합된 사상으로, 오늘날의 시선에서 재해석이 필요한 지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인가?이름: 福澤諭吉 (ふくざわ ゆきち / Fukuzawa Yukichi)생몰년: 1835년 ~ 1901년직업: 사상가, 교육자, 저술가활동: 도쿄의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설립, 『서양사정(西洋事情)』, 『학문의 권장(学.. 더보기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말한 ‘개화’란?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近代化)는 눈부셨습니다.기차가 달리고, 전등이 켜지고,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신문을 읽었습니다.그 중심에는 “문명개화(文明開化, ぶんめい かいか / bunmei kaika)”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모두가 그 흐름을 반기지만은 않았습니다.“개화는 했지만, 우리는 진짜 행복해졌는가?”이 질문을 끈질기게 던진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입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Natsume Soseki)는 누구인가?나쓰메 소세키(1867–1916)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小説家), 비평가(評論家), 그리고 영문학자(英文学者)입니다.도쿄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문부성 유학생으로 영국 런던에 유학한 엘리트였죠.하지만 소세키는 유학 중 깊은.. 더보기
메이지 시대 일본이 말한 ‘개화(開化)’란 무엇인가? 🌸 ‘사람됨이 좋아지는 것’?메이지 시대 일본이 말한 ‘개화(開化)’란 무엇인가?“사람이 개화되었네!”지금은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지만,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는 일상어처럼 쓰였던 표현입니다.그렇다면 일본의 ‘개화(開化)’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했을까요?단순히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걸 말했을까요? 아니면, 그 이상이었을까요?🏮 문명개화(文明開化, bunmei kaika), 메이지 일본의 국가 프로젝트일본어로 문명개화(文明開化)는 👉 ぶんめい かいか (bunmei kaika, 분메이 카이카) 라고 발음합니다.文明(ぶんめい / bunmei): 문명開化(かいか / kaika): 개화, 문명이 열리는 것즉, bunmei kaika는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의 근대화 정책과 사회 변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서양.. 더보기
🏯 “당나라로부터 온 문화의 바람” – 나라시대, 덴표문화(天平文化) 이야기 8세기 일본, 나라시대.이 시기는 단순한 정치 제도나 수도 이전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일본 문화의 황금기, 바로 덴표분카(天平文化)의 시대였습니다.🌏 바다 건너 문명을 향해 – 견당사의 시작“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일본의 조정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인 당나라(唐)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그리하여 630년, 일본은 처음으로 견수사(遣隋使)를 보내고,그 후에도 10여 차례에 걸쳐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합니다.이들은 단순한 외교사절이 아니라,📚 유학생, 승려, 학자, 기술자로 구성된 문화 사절단이었죠.대표적인 인물 – 견당승 일행(鑑真)당나라에서 율종(戒律)을 전수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온 고승으로결국 시력을 잃은 채 수차례의 실패 끝에 일본에 도착.그의 불굴의 여정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더보기
🌾 “모두의 땅”에서 “누군가의 땅”으로 – 8세기 중반 나라시대 공지공민제의 변질 이야기 “모든 땅은 국가의 것이고, 모든 백성은 천황의 백성이다.”이것이 바로 나라시대 일본의 이상적인 원칙,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였습니다.하지만 이 이상은 오래가지 못합니다.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복잡하니까요.🏛 공지공민제란?나라시대의 일본은 중앙집권적 율령국가를 지향하며, 당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공지공민제를 실시했습니다.공지(公地): 모든 토지는 국가의 것공민(公民): 모든 백성은 천황의 백성이 원칙에 따라, 농민에게는 일정한 토지를 나누어 주는 구분전(口分田) 제도가 운영되었죠.하지만 문제는… 이 땅이 진짜 ‘내 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농민의 삶은 괜찮았을까?✔️ 이름뿐인 자기 땅구분전은 세습도 안 되고, 팔 수도 없고, 사용만 허락된 임시 땅이었어요.그런데…📉 수확량은 적고💂‍♂️ 군역.. 더보기
8세기 나라 시대, 쇼무 천황과 나라시대 불교, 정치와 종교가 만나다 🕉️ 나라시대, 불교로 나라를 다스리다– 쇼무 천황과 대불, 그리고 '국가 불교'의 시대“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부처의 힘을 빌리자.”8세기 일본,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국가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나라시대, ‘불교 국가’가 탄생하다710년, 일본은 헤이조쿄(平城京), 오늘날의 나라(奈良)에 수도를 세우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이 시기, 일본은 본격적인 율령국가 체제를 구축하던 중이었어요.하지만 문제는…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역병과 기근자연재해내부 반란과 권력 투쟁👑 바로 이때 등장한 인물이 쇼무 천황(聖武天皇, 쇼무 텐노)입니다.그는 이렇게 생각했죠.“정치만으로는 이 혼란을 막을 수 없다.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다스리자.” 🧘 쇼무 천황의 전략 – 국가 불교化쇼무 천황은 불교를 정.. 더보기
8세기 나라시대, 돈을 찍다! 와도카이친과 화폐경제의 시작 💰 나라시대, 시장과 화폐의 등장!나라시대 도로와 수도가 정비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시장과 화폐의 탄생”입니다.지방의 특산물과 광산물이 수도로 모임수도엔 동시(東市), 서시(西市) 같은 시장 개설708년,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이라는 일본 최초의 금속 화폐 발행💡 처음엔 낯설어 잘 안 쓰였지만, 국가 주도로 화폐경제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였어요.🪙 1. 와도카이친은 왜 발행되었을까?📌 배경: 중앙집권 국가의 완성 시도당시 일본은 **다이호 율령(701)**을 통해 법과 제도 중심의 국가 시스템을 갖춰가던 시기였습니다.이런 국가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세금, 노동력, 군사력… 그리고 경제의 중심인 화폐!🏯 목적 1: 국가 중심 경제 체제 확립전국 각지의 조세,.. 더보기
7세기 일본, 다이카개신에서 다이호율령까지 – 55년의 대개혁 이야기 한 나라의 틀을 바꾸는 개혁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645년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일본의 정치개혁도 마찬가지였습니다.그것은 단순한 쿠데타가 아니라,천황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50년 넘는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오늘은 다이카개신부터 다이호율령 제정(701년)까지,일본이 씨족 중심의 고대 국가에서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645년, 다이카개신의 시작645년, 나카노오에 황자(中大兄皇子)와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 이후 후지와라노 가마타리)는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소가노 이루카(蘇我入鹿)를 궁중 회의 중에 제거합니다.이 사건을 계기로 수백 년 권세를 누리던 소가씨는 몰락했고,곧이어 일본 최초의 연호 ‘다이카.. 더보기
8세기, 헤이조쿄는 작은 장안이었다? 나라 시대에 피어난 당풍(唐風) 문화 “당나라처럼 멋진 수도를 만들자!”이 한마디에서 시작된 나라시대(奈良時代, ならじだい, 나라 지다)는 일본이 ‘국가’라는 형태를 본격적으로 갖춰나간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단순히 수도가 생긴 게 아니라, 일본 전역에 도로, 세금, 화폐, 신분제, 외교 전략까지 깔리던 시기였죠. 오늘은 나라시대의 특징을 쉽고 재밌게 풀어보겠습니다!📌 ‘나라(奈良)’의 어원과 의미✅ 유력한 설: 평평한 땅, 평지(平地)고대 일본어에서 ‘나라’는 평탄한 곳, 고르게 된 땅을 의미했다고 여겨집니다.이는 일본어의 고어 “naru (ならす, 평평하게 하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로,즉 "나라"는 개간된 평지나 넓은 들판을 뜻했다고 보는 거죠.지금의 나라 지역도 실제로 분지 지형이라 비교적 평평한 지역이었어요.✅ 한자 '奈良'는 의.. 더보기
⚔️ “도호쿠를 정복하라” – 8세기 나라 시대 에미시 정벌 이야기 📜 나라시대의 야망 – ‘지도 위의 공백’을 채우다8세기 일본, 나라시대.중앙 정부는 율령국가를 완성하고, 불교, 문자, 관료제를 갖춘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지도 위엔 여전히 공백이 있었어요. 바로 혼슈 북부, 지금의 도호쿠(東北) 지방입니다.그곳엔 복속하지 않은 사람들, ‘에미시(蝦夷)’가 살고 있었죠.👤 에미시란 누구인가요?‘에미시’는 단순한 부족이 아니었어요.구분내용🧬 인종일본 본토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 (야요이 후손)🏞️ 지역혼슈 북동부 (지금의 아오모리, 이와테, 미야기 등)🌱 문화중앙과는 다른 토착신앙, 씨족 중심의 생활🛡️ 정치·군사력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 전술, 지역 지도자 존재중앙에서 보면 '야마토 문화권' 바깥,즉,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인처럼 인식되.. 더보기
8세기 다이호율령: 고대 일본을 중앙집권국가로 만든 법의 탄생 🏯 일본,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를 향하여701년, 일본은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갖추기 위한 대규모 개혁을 단행합니다. 이른바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의 제정입니다. 이 율령은 단순한 법전이 아니라 국가의 조직, 신분 질서, 토지제도까지 아우르는 국가 설계도와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율령이란?율(律) : 형법, 즉 범죄와 처벌에 대한 법령(令) : 행정법과 민법, 즉 백성의 생활과 행정 운영을 규율하는 법➡️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치는 ‘율령 정치(律令政治)’라 불리며,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천황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췄습니다.🏛 중앙 정부: 태정관과 8성의 등장중앙 통치는 ‘태정관(太政官)’이 맡았습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정부의 심장 역할을 했죠.태정관 아래에는 8개.. 더보기
소가씨를 무너뜨린 대격변,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은 왜 일어났을까? 한 나라의 권력은 누가 쥐고 있는가?오늘날엔 당연히 국왕이나 대통령이라 말하겠지만, 고대 일본은 달랐습니다. 천황이 있어도 실제 권력을 쥔 사람은 따로 있었죠.6세기 말~7세기 초 일본, 당시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가문은 바로 소가씨(蘇我氏)였습니다. 모노노베 v. 소가, 불교냐 신토냐? 6세기 야마토 조정을 뒤흔든 호족 전쟁⚔️ 6세기, 호족들의 권력 다툼6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더욱 성장하고 있었지만,내부에서는 유력 호족(豪族)들 간의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졌습니다.특히 다음 두 호족 가문 사yukinoto.tistory.com📌 쇼토쿠 태자 사후, 소가씨의 독재 시대일본 고대사의 위대한 개혁가로 꼽히는 **쇼토쿠 태자(聖徳太子)**는 7세기 초까지 왕권 강화를 시도했지만, 그가 사망.. 더보기
야마토 조정 쇼토쿠 태자, 7세기 일본에 ‘국가’라는 개념을 세우다 🏯 신과 부처의 전쟁 이후,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소가씨의 승리, 스이코 천황의 즉위, 그리고 쇼토쿠 태자의 개혁6세기 일본, 아직 '천황국'이라 부를 수 없던 시절. 나라 전체가 유력 가문(호족)들이 권력을 나눠 가진 연합 정부 형태였던 야마토 조정. 그 중심에서, 일본의 향방을 바꾸는 결정적 한판 싸움이 벌어집니다. 모노노베 v. 소가, 불교냐 신토냐? 6세기 야마토 조정을 뒤흔든 호족 전쟁⚔️ 6세기, 호족들의 권력 다툼6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더욱 성장하고 있었지만,내부에서는 유력 호족(豪族)들 간의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졌습니다.특히 다음 두 호족 가문 사yukinoto.tistory.com불교를 받아들일 것인가?조상신을 계속 섬기며 살아갈 것인가?이 두 질문 앞에서 모.. 더보기
모노노베 v. 소가, 불교냐 신토냐? 6세기 야마토 조정을 뒤흔든 호족 전쟁 ⚔️ 6세기, 호족들의 권력 다툼6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더욱 성장하고 있었지만,내부에서는 유력 호족(豪族)들 간의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졌습니다.특히 다음 두 호족 가문 사이의 충돌이 격렬했습니다:모노노베씨(物部氏 / もののべし): 전통 신을 중시하며 불교 반대소가씨(蘇我氏 / そがし): 외래 문물과 불교 적극 수용결국, 소가씨가 승리하면서 일본에서 불교와 대륙 문화의 수용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소가씨 vs 모노노베씨: 단순한 권력 싸움이 아니었다!이 대결은 두 가문이 대표하는 국가 비전의 충돌이었습니다.가문의 대표가치관입장모노노베씨(物部氏)전통 신앙(신토 중심), 외래 문화 배척보수 세력소가씨(蘇我氏)불교 수용, 대륙 문명 수용, 유학적 가치 중시개혁・개방 세력당시 불교는 백제를 통.. 더보기
🏯 야마토 조정과 대륙 교류: 도래인(도라이진)이 가져온 고대 일본의 ‘문명 점프’ 🌏 도래인(渡来人)이란?도래인(渡来人 / とらいじん / 도라이진)은 4세기부터 7세기 무렵, 한반도와 중국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온 사람들을 말합니다.그들은 단순한 이주민이 아니라, 당시 대륙의 선진 기술과 문화를 전한 지식인・기술자 집단이었습니다.그들의 존재는 야마토 조정의 정치적・문화적 기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세기 후반: 한반도에 병력을 보낸 야마토『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르면, 4세기 말, 일본의 왜(倭)는 한반도 남부에 병력을 파견해 백제(百済)와 신라(新羅)를 도와 고구려(高句麗)와 싸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야마토 조정이 이미 한반도와 정치・군사적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5세기: 중국과 외교, 도래인의 본격적인 유입5세기 야마토 조정은 중국 남조(宋 등).. 더보기
야마토 조정 이야기 - 천황 이전 대왕이 다스리던 시대, 권력의 증거는 전방후원분 🏯 야마토 조정(大和朝廷 / やまとちょうてい)이란?야마토 조정은일본 고대 국가가 생기기 이전,여러 유력한 지방 호족(씨족 지도자)들이지금의 나라현(奈良県, ならけん, 나라켄)인 야마토 지방(大和地方)을 중심으로 모여서로 힘을 합쳐 만든 연합 정부입니다.📌 시대: 3세기 후반 ~ 7세기📌 중심지: 지금의 나라현(奈良県)👑 누가 지배했나요?왕(大王 / おおきみ / 오오키미):연합 정부의 수장이며, 훗날의 천황처럼 여러 호족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당시에는 ‘천황(天皇)’이라는 말이 아직 없었기 때문에 **"대왕(오오키미)"**이라고 불렀어요.호족(豪族 / ごうぞく / 고족):지역마다 세력이 있었던 유력 가문으로,자신들의 가문을 氏(우지 / うじ)라고 부르고조정(왕)으로부터 姓(가바네 / かばね)라는 직.. 더보기
히미코는 누구였을까? 역사와 전설 사이의 여왕 이야기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는 벼농사와 금속기 도입으로 일본 사회가 크게 바뀐 시기입니다.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넘어 논을 만들고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고,식량이 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마을이 커졌습니다.그 결과, 마을 안에서는 곡식이나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생겨나고,사람들을 지휘하거나 보호하는 ‘지배자’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이렇게 해서, 각 지역에는 작은 나라(소국, 小国)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소국끼리의 경쟁과 연합​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에는 일본 열도에 수많은 소국(小國)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소국들은 서로 경쟁하며 때로는 동맹을 맺거나 전쟁을 벌였습니다. 특히, 일부 소국들은 한반도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여 세력을 강.. 더보기
🌾 야요이 시대 - 벼농사, 청동기와 철기, 마을과 빈부격차, 신분의 등장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교적 조용하고 길었던 신석기 시대, 즉 조몬 시대의 뒤를 이어 크게 변화하는 시대가 등장합니다.바로,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やよいじだい)입니다.약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후 3세기까지, 약 600년 동안 이어진 이 시대는 벼농사, 금속기, 정착 마을, 그리고 신분 차이가 등장하며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만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야요이(弥生) 시대라는 이름은 사실 1884년에 도쿄 분쿄구에 있던 '야요이쵸(弥生町)'라는 지역에서 토기가 발견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새로운 양식의 토기가 조몬 시대의 것과는 뚜렷하게 달라서, 사람들은 이 토기를 "야요이식 토기"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를 처음에는 "야요이식 시대"라고 불렀.. 더보기
일본의 신석기 시대 - 조몬 시대(縄文時代, 조몬 지다이) 줄무늬 토기와 조개무덤, 그리고 흙인형에 깃든 신앙까지 1. 줄무늬 토기의 시대, 조몬 지다이 조몬시대(縄文時代, じょうもんじだい / Jōmon Jidai)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약 기원전 13,000년부터 기원전 300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선사시대입니다. 이 시기의 일본인은 이미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으며, 토기, 주거지, 신앙 등 고유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조몬(縄文)’이라는 이름은 이 시대의 토기에 새겨진 줄무늬(새끼줄 무늬)에서 유래했습니다.즉, 조몬시대는 ‘줄무늬 토기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요.👉🏻나가오카시 마고 유적 출토 "화염 토기"의 3D 데이터 보러 가기 縄文時代 - Wikipedia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縄文時代(じょうもんじだい)は、日本列島における時代区分の一つである。旧石器時代の後に当たり、世.. 더보기
구석기 시대 일본, 먹고 사는 데 토기는 필요 없었다? 🏞️ 일본의 구석기 시대란?1. 구석기 시대 (旧石器時代, きゅうせっきじだい / 큐우셋키 지다이)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이어진 시기로, 사람들이 타제석기(打製石器, だせいせっき , Dasei sekki, 다이세이 셋키)라 불리는 거칠게 깬 돌도구를 사용하며 생활하던 시기입니다.아직 농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렵(사냥)과 채집 중심의 삶을 살았으며, 소규모 집단으로 이동하며 생활했습니다.2. 일본은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약 1만 년 전, 큰 지각변동과 함께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일본은 현재처럼 섬나라가 되었습니다.하지만 구석기 시대 초기에는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들이 걸어서 일본 열도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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