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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 日本の歴史 | にほんのれきし

야마토 조정 쇼토쿠 태자, 7세기 일본에 ‘국가’라는 개념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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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부처의 전쟁 이후,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 소가씨의 승리, 스이코 천황의 즉위, 그리고 쇼토쿠 태자의 개혁

6세기 일본, 아직 '천황국'이라 부를 수 없던 시절. 나라 전체가 유력 가문(호족)들이 권력을 나눠 가진 연합 정부 형태였던 야마토 조정. 그 중심에서, 일본의 향방을 바꾸는 결정적 한판 싸움이 벌어집니다.

 

모노노베 v. 소가, 불교냐 신토냐? 6세기 야마토 조정을 뒤흔든 호족 전쟁

⚔️ 6세기, 호족들의 권력 다툼6세기 후반, 야마토 조정(大和朝廷)은 더욱 성장하고 있었지만,내부에서는 유력 호족(豪族)들 간의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졌습니다.특히 다음 두 호족 가문 사

yukinoto.tistory.com

불교를 받아들일 것인가?
조상신을 계속 섬기며 살아갈 것인가?

이 두 질문 앞에서 모노노베씨소가씨는 날카롭게 갈라섭니다.

  • 모노노베씨(物部氏): 신토 중심, 불교 반대
  • 소가씨(蘇我氏): 불교 수용, 대륙 문화 개방

결국 587년, 전투 끝에 소가씨가 승리합니다.
이 승리는 단순한 권력 다툼의 결과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짓는 역사적 분기점이었습니다.


👑 일본 첫 여성 천황의 등장 –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 すいこてんのう, 스이코 덴노)

이 전투의 뒤를 이어 조정의 안정을 위해 즉위한 인물이 바로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천황,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스이코 덴노)입니다.

  • 즉위: 서기 592년 (6세기 후반)
  • 일본 역사상 첫 여성 천황
  • 원래는 비다, 남편 요메이 천황(用明天皇)의 사망 후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즉위

당시는 호족 갈등과 정권 불안정 속에 있었지만, 그녀는 조카 쇼토쿠 태자 섭정(정치를 대신하는 역할)으로 삼아 정치 안정과 중앙 집권화를 시도합니다.


🧠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 しょうとくたいし)

593년, 불과 19살의 나이에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쇼토쿠 타이)는 섭정으로서 정치를 이끌기 시작합니다.
그가 한 일들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의 ‘틀’을 세운 일이었습니다.

  • 본명: 우마야도노오지(厩戸皇子 / うまやどのおうじ)
  • 생몰: 574년 ~ 622년
  • 스이코 천황의 조카이자, 일본 고대의 정치 개혁자
  • 593년, 19세 나이에 섭정(摂政 / せっしょう)으로 임명되어 야마토 조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합니다.

쇼토쿠 태자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으로 이동)

🛠 쇼토쿠 태자의 주요 개혁

🛠 대표 개혁 1. 12관제(冠位十二階)

“혈통이 아니라, 능력과 공적으로 벼슬길에 오른다.”

당시엔 모든 관직이 가문 출신에 따라 세습되던 시대.
쇼토쿠 태자는 이를 깨고, 모자 색깔에 따라 12단계의 관직 체계를 정비했습니다.

💡 이 제도는 일본 최초의 실력주의 관료제였고,
왕 중심의 중앙집권 국가 체제로 나아가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 대표 개혁 2. 17조 헌법(十七条憲法)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화합을 중시하고, 충성을 다해야 한다.”

604년에 발표된 이 헌법은
현대 헌법처럼 법률 조항이라기보다, 공직자 윤리와 정치 이념에 대한 선언문입니다.

  • 유교적 질서(충, 화, 예 등)를 기반으로
  • 권력 남용을 억제하고,
  • 국가 통합의 원리를 강조한 첫 문서입니다.

쇼토쿠 태자의 '17조 헌법(十七条憲法)'은 일본 고대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서이지만, 현대의 헌법(憲法)과는 내용, 목적, 성격 면에서 매우 다릅니다.

📜 쇼토쿠 태자의 「十七条憲法」(604년 제정)

  • 제정자: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 시기: 604년, 스이코 천황 재위 시기
  • 구성: 17가지 조항
  • 목적: 공직자들의 행동 지침과 정치 윤리를 제시

이 문서는 당시 야마토 조정이 점차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던 시기,
공직자(특히 호족 계층)의 권력 남용, 분열, 비효율을 극복하고
왕권을 중심으로 질서 있는 정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十七条憲法」의 주요 가치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가치 설명의 예시 조항
화합(和) 분열된 호족들 사이의 단결 제1조: “화(和)를 귀하게 여기라(和を以て貴しと為し)”
충성(忠) 천황과 조정에 대한 절대적 복종 제3조: “임금에 충성을 다하라”
불교・유교 이념 도덕, 질서, 예(禮)의 강조 제2조: “삼보(불교)에 귀의하라”, 제12조: “관리는 부정하지 말라” 등

💡 이 문서는 법률이라기보다는 정치 철학이나 공직자 윤리 강령에 가깝습니다.

📘 ‘헌법(憲法)’이라는 말,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 당시의 '憲法' = 윤리적 지침, 이념 선언

  • ‘憲(법 헌)’은 원래 '거울', '모범', '기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대에는 “정치의 바른 길(모범)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 따라서 쇼토쿠 태자의 헌법은 ‘법률’이 아니라 ‘도덕적 규범’이자 ‘정치 선언’입니다.

✅ 현대의 '憲法' = 국가의 최고 법

  •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정부 조직, 입법・사법・행정의 구조 등을 정한
    국가 통치의 최고 규범이자 법률 체계의 근본
  • 일본: 《日本国憲法 (1947년 시행)》
  • 한국: 《대한민국 헌법》 등

요약하자면
쇼토쿠 태자의 ‘헌법’은 '법률'이 아니라 ‘이상적 통치의 지침’에 가까우며,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헌법(憲法)은 법적 강제력을 가진 규범 체계입니다.

✍️ 학계에서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 "十七条憲法은 일본 정치에서 윤리와 사상을 공식 문서로 제시한 최초의 사례다."
  • "왕권 강화와 관료제 확립을 위한 이념적 기초 문서였다."
  • "중국의 유교, 불교적 가치관을 혼합하여 일본식 통치 철학을 형성했다."

🌏 외교 전략 – 수나라에 보낸 편지 한 장

607년, 쇼토쿠 태자는 중국의 강대국 수나라에 사신을 보냅니다.
편지 서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죠.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문서를 보낸다.”

이 말은 단순한 외교 인사말이 아닙니다.
당시 수나라 황제와 대등한 입장임을 천명한, 일본 외교의 자주 선언이었습니다.

💡 이후 일본은 중국 문명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불교, 유교, 제도, 문자, 건축 등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게 됩니다.


🔄 불교와 문명의 수용, 그리고 일본의 변화

소가씨의 승리로 열린 불교의 문은
쇼토쿠 태자의 시대에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 사찰이 세워지고
  • 불교적 통치 이념이 정비되고
  • 도래인(한반도・중국계 이주민)들이 관리로 중용되며
  • 야마토 조정은 진정한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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