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중 식당에서 밥 위에 날달걀을 톡 깨 올리고 간장만 뿌려 쓱쓱 비벼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 있으신가요? (저는 날달걀밥 정말 안 좋아합니다...)
한국에선 흔치 않은 모습이지만, 일본에서는 ‘타마고카케고항(卵かけご飯)’이라는 이름의 일상적인 한 끼입니다.
- 타마고(卵): 달걀
- 카케(かけ): 걸치다, 끼얹다, 부어 먹다는 의미의 동사 '카케루(かける)'에서 온 명사형
- 고항(ご飯): 밥
즉, ‘타마고 카케 고항’은 ‘달걀을 끼얹은 밥’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카케’는 달걀을 밥 위에 끼얹는 행동을 말하죠.
왜 일본인은 이렇게 ‘미끄덩’한 음식을 즐길까요? 그 속에는 일본 고유의 식문화와 기후, 건강에 대한 인식까지 다양한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1. 목넘김의 미학, ‘노도고시(のどごし)’
일본 사람들은 음식의 씹는 맛보다 ‘넘어가는 감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소바나 우동도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게 예의처럼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특히 낫토, 날달걀, 토로(참치 뱃살), 오쿠라(생오크라), 모즈쿠(해조류)처럼 미끌거리는 음식은 ‘노도고시가 좋다’고 칭찬받습니다.
입안에서 오래 머무는 음식이 아닌, 부드럽고 시원하게 목으로 넘어가는 식감 자체가 맛의 요소인 것입니다.
2. 무더운 여름, 입맛 없을 땐 미끌미끌이 최고
일본의 여름은 덥고 습하기로 유명하죠.
그럴 때 식욕을 돋우는 음식이 바로 가볍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미끄덩한 식감의 음식들입니다.
대표적인 여름 별미인 ‘토로로 소바’는 산마(마)를 갈아낸 끈적한 토로로를 차가운 메밀국수 위에 얹어 먹는 요리로, 더운 날에도 부담 없이 후루룩 먹을 수 있어 인기가 많습니다.
3. 날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식문화
한국에서는 날달걀이나 낫토 같은 음식에 대해 “비리다”, “느글거린다”는 반응이 흔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신선한 식재료를 그대로 즐기는 문화가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어 날달걀, 생선, 해조류를 날것으로 먹는 데에 거부감이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소재 본연의 맛’과 질감을 중요시하고, 음식을 익히지 않아도 맛과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4. 건강식이라는 이미지
일본에서 낫토, 오쿠라, 토로로, 모즈쿠 등 미끌미끌한 식재료는 건강식품으로 유명합니다.
미끌거리는 음식 =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일부러라도 챙겨 먹는 사람이 많죠.
장 건강, 면역력, 피부 미용 등 기능성 식품으로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즈쿠(もずく, Mozuku)는 일본 특히 오키나와 지역에서 많이 먹는 끈적한 질감의 갈색 해조류입니다. 과학적으로는 sphaerotrichia divaricata 같은 해조류 종류로 분류되며, 일본에서는 주로 식초에 절여서 차게 먹는 ‘모즈쿠스’(もずく酢) 형태로 많이 소비됩니다.
한국과의 차이점은?
한국은 불맛, 바삭함, 쫄깃함처럼 씹는 맛과 자극적인 양념을 중요시합니다.
익혀서 안심하는 문화, 날 음식에 대한 위생적 우려, 그리고 뜨겁고 매운 음식에 익숙한 입맛 때문에 미끄덩한 식감은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무리하며
‘날달걀 밥’ 하나에도 이렇게 큰 문화 차이가 있다니, 참 흥미롭죠? (개인적으로는 날달걀밥 비호.... 좋아하지 않습니다.....ㅠㅠ)
일본의 미끄덩한 음식은 단순한 입맛 취향이 아니라, 기후와 건강, 미학까지 연결된 깊이 있는 식문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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