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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곡창지대 도호쿠 – “일본의 밥상은 여기서 시작된다”
도호쿠는 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일본 최대의 농업지역으로 성장해왔습니다.
- 🍚 야마가타현(山形県) 쇼나이 평야(庄内平野)
- 🍚 아키타현(秋田県) 아키타 평야(秋田平野)
→ 일본을 대표하는 쌀 생산지대
그뿐만 아니라…
- 🍎 아오모리현(青森県) 쓰가루 평야(津軽平野): 사과의 메카
- 🍒 야마가타 분지(山形盆地): 일본 최고의 사쿠란보(체리) 생산지
도호쿠는 자연과 계절이 키워낸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2️⃣ 왜 상공업은 늦었을까?
메이지 시대, 일본은 급속한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그 중심은 도쿄·오사카·나고야 같은 도심부에 집중되었습니다.
- 도호쿠는 원거리 농업 공급지 역할에 머무르며
- 상공업 발전은 지체
도시에는 공장이 생겼지만, 도호쿠에는 농민과 쌀만 남은 시대가 계속되었습니다.
3️⃣ 쇼와 공황과 ‘이촌향도(離村向都)’
1930년대 쇼와 공황(昭和恐慌)
쇼와 공황(昭和恐慌, Shōwa Depression)은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의 충격이 일본에까지 미치며, 1930~1931년경 발생한 일본의 경제 위기를 말합니다. 이 공황은 쇼와 시대(1926~1989) 초기에 일어난 경제 불황이라는 의미에서 ‘쇼와 공황’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되면서, 일본 역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실크(비단)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주요 수출품 수요가 급감했고, 이로 인해 무역수지도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당시 일본 정부(하마구치 내각)는 1930년 금본위제 복귀 정책을 강행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엔화의 가치를 급격히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그 결과 일본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이 더욱 위축되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농촌 지역이었습니다. 쌀을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도호쿠(東北)와 홋카이도(北海道) 등지의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특히 소작농의 몰락과 함께 아동을 도시로 보내는 일명 ‘집단 취직’, 심지어 빈곤 아동의 매매까지 발생하면서, 당시의 사회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쇼와 공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일본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자유경제 체제에서 점차 벗어나, 국가 개입 중심의 통제 경제로 전환하게 되었고, 이는 곧 만주사변(1931)과 군국주의로의 방향 전환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쌀값 폭락, 농촌 경제 붕괴.
가난한 집안의 중학생들은 졸업하자마자 도쿄행 열차에 올랐습니다.
1950년대, 도호쿠에서는 매년 수만 명의 청소년이 “집단 취직”이라는 이름 아래 도쿄와 수도권의 중소기업 노동자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들은 고도성장의 엔진이 되었지만 고향은 일할 사람을 잃은 마을로 남았습니다.
1950년대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집단취직(集団就職, 슈우단슈우쇼쿠)은, 가난한 농촌 지역의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대도시(특히 도쿄나 오사카)로 이동해 취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당시 도호쿠 지방은 산업화가 더딘 농촌 지역으로, 전쟁 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후 복구와 산업화로 인해 노동력이 급격히 부족했죠.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정부와 기업, 학교가 협력해 중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버스를 대절해 학생들을 집단으로 보내고, 도쿄역이나 우에노역에 도착한 소년·소녀 노동자들을 '카리스마 교사'나 기업 담당자가 맞이하는 장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집단취직은 1960년대 고도성장기까지 계속되었으며, 일본 사회에서 농촌과 도시, 교육과 노동, 가족과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현상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 노동자로 정착하면서 일본의 도시화와 산업화를 견인한 인력 기반이 되었고, 동시에 가족 해체, 교육 기회의 단절, 노동 착취 등 부작용도 컸습니다.
간단히 말해, 도호쿠 지역의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집단으로 도시로 이동해 노동자가 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1950년대 집단취직입니다.
4️⃣ “사람이 없으니, 마을이 사라진다” – 과소(過疎)의 시대
젊은 세대가 떠나간 도호쿠의 농촌은
- 생산기반 붕괴
- 지역공동체 해체
- 학교, 상점, 교통망의 소멸
→ ‘과소문제(過疎問題)’로 대표되는 일본 농촌 붕괴의 상징적 공간이 되었습니다.
과소문제는 일본의 농촌이나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그로 인해 마을 전체가 유지되지 못하는 문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이 너무 적게 남아서 마을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입니다.
이 문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이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나 교육 기회를 찾아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로 떠났고, 고향에는 노인들과 어린이만 남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출산율도 점점 낮아지면서 마을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의 수가 크게 줄었고, 학교가 문을 닫거나 병원, 상점들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과소화가 심한 지역은 농업이나 어업 등 전통 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가 거의 없어져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마을은 주민의 대부분이 고령자이고, 빈집이 많아지며, ‘살아 있지만 기능은 멈춘 마을’이라는 뜻의 ‘리빙 데드 빌리지’라는 표현까지 생겼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에게 정착 지원금을 주거나, 농업을 다시 활성화하려는 여러 가지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계속되고 있어, ‘지방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습니다.
5️⃣ 산업이 돌아오다 – 늦은 공업화의 물결
1960년대 중반, 일본 정부는 도호쿠 지역의 공업화 정책을 본격화합니다.
- 🏭 각현의 연안지역에 공업단지 조성
- 노동력은 싸고, 땅값은 낮고, 수도권과는 적당히 가까운 거리
6️⃣ 버블기의 기회 – 전자와 IC의 도호쿠 진출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기 수도권 지가가 폭등하자, 도호쿠는 전자부품·집적회로(IC) 공장 유치지로 급부상합니다.
- 미야기현(宮城県), 야마가타현(山形県) 등 → 반도체 조립공장, 정밀 전자 공장 대거 진출
눈의 나라 도호쿠에 IC가 꽃피다.
7️⃣ 1990년대 이후 – 자동차 산업까지 뿌리내리다
1990년대 이후에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의 자동차 조립공장 및 부품공장이 도호쿠에 진출.
특히:
- 미야기현 도요타 공장
- 이와테현(岩手県) 닛산 계열 부품공장 등
→ 도호쿠는 ‘농업’에서 시작해
제조업의 거점으로까지 확장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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