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의 역사 | 日本の歴史 | にほんのれきし

🌾 야요이 시대 - 벼농사, 청동기와 철기, 마을과 빈부격차, 신분의 등장

728x90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교적 조용하고 길었던 신석기 시대, 즉 조몬 시대의 뒤를 이어 크게 변화하는 시대가 등장합니다.
바로,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やよいじだい)입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후 3세기까지, 약 600년 동안 이어진 이 시대는 벼농사, 금속기, 정착 마을, 그리고 신분 차이가 등장하며 일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만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요이(弥生) 시대라는 이름은 사실 1884년에 도쿄 분쿄구에 있던 '야요이쵸(弥生町)'라는 지역에서 토기가 발견된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새로운 양식의 토기가 조몬 시대의 것과는 뚜렷하게 달라서, 사람들은 이 토기를 "야요이식 토기"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를 처음에는 "야요이식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식(式)’이라는 말을 생략하고,
지금은 간단하게 "야요이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합니다.


🧬 조몬 시대에서 야요이 시대로

조몬 시대가 수천 년간 이어졌다면, 야요이 시대는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벼농사 기술과 금속기 사용법이 전해지며 일본 사회는 빠르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 조몬 시대: 수렵, 어로, 채집 중심 / 마제석기, 조몬토기 사용 / 평등한 공동체
  • 야요이 시대: 벼농사 본격화 / 청동기·철기 사용 / 빈부와 신분 차이 등장

🌾 논밭과 마을의 탄생

야요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벼농사(수전 농업)입니다.
사람들은 물 얻기 쉬운 저지대에 모여 살며, 근처에 논을 만들고, 수혈식 주거(땅을 파서 만든 움집) 옆에 고상식 창고(기둥 위에 지은 음식 저장 창고)를 짓고 살았습니다.

🏠 1. 수혈식 주거(竪穴住居)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의 타테아나 쥬우쿄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으로 이동)

  • 한자: 竪穴住居
  • 히라가나: たてあなじゅうきょ
  • 로마자 표기: Tateana Jūkyo
  • 한국어 발음: 타테아나 쥬우쿄
  • 뜻: '땅을 파서 만든 집'이라는 의미로, ‘움집’이라고도 부릅니다.

🔍 구조와 특징

  • 땅을 둥글거나 네모나게 1~2m 깊이로 파고,
    중심에 기둥을 세운 뒤, 나무, 풀, 흙으로 지붕을 덮은 구조입니다.
  • 내부에는 **불을 피우는 화덕(炉, ろ / 로)**이 중앙에 설치되어 있어
    난방요리에 사용되었습니다.
  • 벽이나 지붕은 짚이나 풀로 덮어 단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구조였어요.
  • 조몬 시대부터 존재했지만, 야요이 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 2. 고상식 창고(高床倉庫)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 복원 타카유카 소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으로 이동)
  • 한자: 高床倉庫
  • 히라가나: たかゆかそうこ
  • 로마자 표기: Takayuka Sōko
  • 한국어 발음: 타카유카 소코
  • 뜻: ‘높은 마루가 있는 저장고’, 즉 기둥 위에 지어진 창고입니다.

🔍 구조와 특징

  • 기둥으로 집 전체를 땅 위로 띄운 구조로, 바닥이 지면보다 높이 떠 있습니다.
  • 바닥 아래로 공기가 잘 통하고, 해충이나 습기, 쥐로부터 곡물을 보호할 수 있어 곡식 저장용으로 매우 유리합니다.
  • 주로 벼, 콩, 조 등의 곡물, 또는 음식물과 의례용 물품 등을 저장했습니다.
  • 지붕과 벽은 나무와 풀로 만들고, 출입은 사다리를 이용했습니다.
  • 사회 조직이 생기며 마을 공동 저장고나 지배층의 재산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 수혈식 주거와 고상식 창고의 조합

야요이 시대 사람들은 살림집은 수혈식,
저장창고는 고상식으로 기능을 분리해 사용했습니다.

  • 살던 공간(생활) → 수혈식 주거
  • 쌓아두던 공간(생산물 저장) → 고상식 창고

이러한 분화는 생산과 분배 구조의 시작,
농경 사회로서의 정착과 조직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벼농사 덕분에 식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었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시즈오카현 도로 유적( 静岡県 登呂遺跡, しずおかけん とろいせき, 시즈오카켄 도로 이세키),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 (佐賀県 吉野ヶ里遺跡, さがけん よしのがりいせき, 사가켄 요시노가리 이세키)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마을터, 곡물 저장고, 무덤, 방어용 해자 등 다양한 흔적이 발견됩니다.

 

시즈오카켄 도로 이세키 (출처: 아래 링크 참조)

 

登呂遺跡とは

 

www.shizuoka-toromuseum.jp

 

 

吉野ヶ里遺跡の紹介|吉野ヶ里歴史公園

吉野ヶ里遺跡は、工業団地開発に伴う埋蔵文化財発掘調査により、小さなムラが弥生時代...

www.yoshinogari.jp

사가켄 요시노가리 이시켄 (출처: 위 링크 참조)


⚔️ 금속기 – 도구 그 이상

야요이 시대에는 청동기와 철기 모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한반도나 중국에서 들여온 금속기를 사용했지만, 점차 일본 내에서도 금속기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 청동기: 동검, 동모(창), 동탁(방울), 동경(거울) 등 → 제사용 또는 권력의 상징물
  • 철기: 실제 농기구나 무기 제작에 사용 → 생산력과 무력 강화

🏘️ 사회의 변화 – 빈부와 신분의 차이

조몬 시대에는 비교적 평등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야요이 시대에는 토지나 곡식을 많이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무덤 규모나 묻힌 부장품의 차이에서 신분제의 시작이 나타납니다.

이는 훗날 고대 일본의 왕권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 야요이 토기 – 실용적인 아름다움

야요이 토기 (출처: 위키피디아,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으로 이동)

조몬 시대의 토기가 화려한 무늬와 장식을 지녔다면,
야요이 시대의 토기(야요이토기)는 훨씬 얇고 단순하며 실용적인 형태를 가집니다.

조리, 저장, 운반에 적합한 구조로,
변화된 생활 양식에 잘 어울리는 새로운 도구였습니다.


🧭 마무리 – 야요이 시대는 무엇을 남겼을까?

야요이 시대는 벼농사, 금속기, 마을, 신분제가 등장한 변화와 시작의 시대입니다.
이 시기를 통해 일본은 단순한 수렵채집 사회에서 벗어나 국가 형성의 길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조몬 시대의 자연과 조화로운 삶에서, 야요이 시대의 생산과 조직 중심 사회로. 이 변화는 일본 고대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728x90